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셰익스피어와 몽테뉴 그리고 소크라테

셰익스피어가 에세에서의 몽테뉴의 이미지로 햄릿의 장난기 어린 모습을 창조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론 몽테뉴는 광기 어린 햄릿과는 달리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를 터득한 철학자였습니다. 햄릿이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광기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과는 달리 몽테뉴는 그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수용해내는 지혜를 터득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몽테뉴는 소크라테스를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래서인지 에세는 무척이나 소크라테스적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적법하게 즐길 줄 아는 것으로 소크라테스처럼 걱정이나 근심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독배를 받아든 상황에서도 죽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신비의 깨달음을 갈구하며 마치 스스로를 다른 사람을 보듯 객관적으로 관찰할 줄 알았던 소크라테스처럼 몽테뉴는 이웃을 보듯 자기 스스로를 보았으며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공직까지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 연구자인 허버트 루시는 완전하지도 않은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만족하면서도 전혀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이게 바로 몽테뉴의 놀라운 점이 아닌가라는 말로 몽테뉴가 삶을 진실하게 살아낸 남다른 비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21000개가 넘는 단어들을 사용했으며 대략 12단어 당 하나꼴로 언어를 새롭게 창조해낸 즉 1800단어나 되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서양 문학사를 통틀어 비견할 인물이 없는 천재 중의 천재로 손꼽히는 셰익스피어도 몽테뉴에게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햄릿이란 작품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희극은 물론 비극에서도 동등하게 탁월함을 과시할 수 있는 위대하 극작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햄릿이 왜 그렇게 위대한 작품인지에 대해서 예일대 인문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은 그의 저서인 세계문학의 천재들에서 셰익스피어는 작가이기에 앞서 뛰어난 심리학자로 그 어떤 시인이나 작가도 이제껏 발견하거나 창조하지 못했던 가장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자기 엿듣기라는 현상을 스스로 인식하는 주인공을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엿듣는다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화자 자신이 알고 있거나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엿듣는 것은 자신이 화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은 너무 짧아 자기 엿듣기의 행위는 자칫 은유적으로 보이지만 문자 그대로 무인식의 순간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아마도 이 순간을 포착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또한 몽테뉴가 스스로를 이웃을 보듯 대하며 에세라는 작품을 통해 끝없는 자아탐구를 수행했던 것과 맞닿아 있는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몽테뉴가 그러했듯이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보여주는 자기 엿듣기는 변화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햄릿은 스스로 하는 말을 엿들을 때마다 눈에 띄게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4000행으로 이루어진 이 비극에는 햄릿의 대사가 무려 1500행에 이르는데도 핵심적인 대사가 없습니다. 극 전체를 통해 힘릿은 스스로를 엿들음으로써 자신을 창조해 나갑니다. 실례로 햄릿은 일곱개의 독백 중 가장 유명한 독백에서 창칼을 들고 노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블룸은 이때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창조한 것은 자라나는 자아의 정신을 위협하는 요소에 저항하는 내적 언명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햄릿의 자아탐구는 절대적인 것이며 자아의 외부에 있는 것은 하찮은 것으로 무시해버립니다. 햄릿은 자신의 말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말을 되새기며 자기의식을 연구하는 신학자가 되는데 이러한 의식이 너무나 넓어 그 한계를 찾아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다이몬의 소리를 경청했듯이 이러한 자기 엿듣기는 변화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내적 과정으로 훗날 체호프, 스탕달, 도스토예프스키와 프루스트 등과 같은 많은 작가들에게 중요한 전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